창세기
2016.12.15 11:31

8과 약속의 세대

조회 수 110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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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눔을 하다가 8과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와서 올려봅니다.

1. 야곱이 에사우처럼 위장했다고 해도, 이사악이 늙어서 눈이 잘 안보인다고 해도, 이사악은 목소리를 구별할 수 있었을텐데 어찌 못알아본걸까요? 이것은 속아주었다라고 보아도 되는건지요?


2. 같은 배에서 나온 아이들인데 어머니 레베카는 왜 야곱을 편애했는가? 어려서부터 얌전하고 약한 아이에게 떡하나 더주는 그런 심리인가요?


3. 주로 이제까지 인간의 죄->하느님의 대책이었다면, 이것은 처음부터 하느님의 계획이었던 것인가요? 야곱으로 하여금 축복을 가로채는것이? 


4. 이것은 하느님의 자유의지였다고 해설에 나와있는데, 하느님께선 왜 이런 비윤리적 방법을 택하신 것인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소 난해한 질문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부탁드려요!

  • ?
    대전청년성서 2016.12.15 13:20
    +.야훼이레
    안녕하세요? 대전교구 청년성서 교육전례부입니다.
    질문 확인하였습니다.
    검토후 답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대전청년성서 2016.12.20 21:38

    아래와 같이 답변 드립니다. 답을 드린다기보다는, 함께 묵상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내용을 관련 서적에서 찾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조만간 봉사자의 방 카테고리에 참고 서적 추천이 게시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질문과 고민 함께 나눠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1. 야곱이 에사우처럼 위장했다고 해도, 이사악이 늙어서 눈이 잘 안 보인다고 해도, 이사악은 목소리를 구별할 수 있었을 텐데 어찌 못 알아본 걸까요? 이것은 속아주었다라고 보아도 되는 건지요?
    성경 본문에서는 이사악이 속아주었다는 것은 알 수 없습니다. 이사악은 목소리를 듣고 야곱을 의심하지만, 야곱과 에사우의 명백한 차이인 피부의 촉감으로 야곱이 아닌 에사우일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행동은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습니다. 야곱이 나이가 들어 소리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고, 목소리만으로 판가름하기엔 두 형제의 목소리가 비슷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질문하시는 분의 생각대로 야곱이 속아주기로 마음 먹었을지도 모르죠. 어떤 추측이든, 성경 본문에서는 그 근거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성경에서는 다만, 목소리는 야곱의 목소리였으나 손은 에사우의 손이라고 이사악이 생각하였고, 그 두가지 사실을 바탕으로 이사악은 축복을 주기로 마음 먹었다는 것만 전하고 있습니다.
    성경 본문 너머의 이야기를 생각하는 것은 독자의 자유일 것입니다. 그것은 독자 자신의 순수한 상상일 수도 있고, 성경 외적인 자료, 즉 당시 시대상과 같은 역사적 자료나 추가적으로 전해지는 사료 등을 기반으로 하는 추론일 수도 있겠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토론하면서 나온 결론일 수도 있겠죠. 다만 그 ‘성경 외적인 상상’을 도입한 해석이 자신의 삶에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순전히 묵상하는 사람 자신의 몫일 것입니다. 다만, 그 결론 하나에만 고착되는 것은 위험하겠습니다. 무엇이 사실인지 추론하고 확정하기보다는, 성경 본문의 외연을 확장해가며 자신의 신앙을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2. 같은 배에서 나온 아이들인데 어머니 레베카는 왜 야곱을 편애했는가? 어려서부터 얌전하고 약한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주는 그런 심리인가요?
    레베카가 야곱을 편애한 이유는 성경 본문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에사우에 비해 야곱의 온순한 성격에 레베카가 더 잘 맞았을 수도 있고, 이민족인 히타이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인 에사우를 레베카가 싫어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레베카가 야곱을 편애한 이유는 밝히지 않은 채 레베카가 야곱을 편애하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느 이야기가 그렇듯 성경의 이야기 역시 상황의 모든 부분에 대해 말해주지 않으며, 성경 본문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를 중심으로 상황을 서술합니다. 성경 저자에게 레베카가 야곱을 편애한 이유는 중요치 않고, 그저 레베카가 야곱을 편애함으로써, 불콩죽으로 거래한 것처럼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 이스라엘의 선조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할 뿐입니다. 다만 우리는 성경 본문의 경계를 넘어서 정황의 앞뒤 혹은 세밀한 부분을 추론하거나 상상할 수 있고, 그 경계 밖의 이야기가 우리 삶에 주는 의미에 대해서도 함께 묵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야곱과 에사우의 이야기에서 장남인 에사우가 아닌 차남인 야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에 대해 다윗이나 솔로몬 등 이스라엘의 왕이 장자가 아닌 것에 대한 변호라고 보는 견해도 있으며, 또는 히타이트 이민족을 아내로 맞이한 에사우의 모습을 그리며 이민족에 대한 경계를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기도 합니다.

    3. 주로 이제까지 인간의 죄->하느님의 대책이었다면, 이것은 처음부터 하느님의 계획이었던 것인가요? 야곱으로 하여금 축복을 가로채는 것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하느님의 계획이었는지, 어떤 식으로 하느님의 의지가 개입한 것인지 인간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다만 성경 안으로 들어가보았을 때, 이사악와 레베카도, 야곱과 에사우도 자신의 바람에 따라, 하느님께서 주신 자신의 자유의지로 자신의 선택을 해왔고, 때로는 비윤리적인 선택을 했습니다만, 하느님께서는 각자의 이기적인 선택 안에서도 당신의 선을 이끌어 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래를 예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로 이끄는 각자의 삶 안에서 당신의 선을 이루시며, 그 섭리는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고 우리는 그저 그것을 신비라고 부릅니다.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신비로운 섭리 안에서 인간인 우리는 그저 하느님의 선하심을 믿으며,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로서 당신의 뜻에 맞는 가장 선한 선택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실상 하느님의 방식은 성조 시대 이전과 성조 시대에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인간의 자유의지로 원하는 것을 행했으며, 그것은 때때로 죄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선은 꺾이지 않은 채 당신의 방법대로 드러났습니다. 다만 독자가 보기에 성조 이전과 성조 시대에 하느님께서 개입하는 모습이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서술하는 방법의 차이겠습니다. 성조 시대 이전 즉 신화 시대에는 저자가 하느님을 당신의 의지를 그대로 표현하며 개입하는 모습으로 그렸다면, 성조시대를 서술하는 저자는 하느님을, 좀 더 인간 개인이 맞닥뜨리는 현실과 맞게 인간이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당신의 선을 이뤄나가는 모습으로 그렸기 때문에 독자 입장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차이를 느낄 수는 있겠습니다.

    4. 이것은 하느님의 자유의지였다고 해설이 나와있는데, 하느님께선 왜 이런 비윤리적 방법을 택하신 것인지,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의 자유의지라 함은 인간으로서는 그 선택의 이유와 방식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련의 이야기는 하느님께서 비윤리적인 방법을 선택하셨다기보다는, 인간 개개의 선택 안에서도 당신의 큰 뜻을 이루시는 하느님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비윤리적인 방법을 택하셨다기보다는, 개개 인간이 만들어낸 비윤리적인 선택의 합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당신의 선을 이루고 계시다고 보여집니다. 다만 우리가 여기서 인간으로써 알 수 없는 하느님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 선택이 어떤 인간의 부족함이나 훌륭함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하느님의 선택은 인간의 기준에서 에사우가 부족하거나 야곱이 뛰어나기 때문에 행해진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당신의 자유의지로서 일어납니다.
    창세기 본문은 윤리적인 삶의 모습을 강조하기보다는, 인간 각자의 선택 안에서 모두를 위한 당신의 뜻을 이루는 하느님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창세기의 이야기는 각각 개인의 이기적이고 비윤리적인 선택과 그 결과를 어떠한 사회윤리적인 기준의 적용 없이 풀어나가면서도 그 안에서 이뤄지는 하느님의 선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윤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으며, 때론 그 윤리라는 기준조차 불분명하며 시대 안에서 변해가지만,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선 만큼은 인간이 정한 윤리라는 기준과는 상관없이 당신의 결론을 짓기 위해 나아갑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신앙인으로서 우리 인간은 그 선의 방향을 믿으며, 그 선에 맞갖게 살아가고자 애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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